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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전기밴 아니다. 일본시장 파고든 기아의 PBV 전략

임재범 기자 발행일 2026-05-14 14:19:45
철수의 아픔 끝…기아, PV5 앞세워 일본시장 재도전
일본시장, 이번엔 PBV로 승부 건다
일본차 성지에 PV5, 새로운 이동 플랫폼 제시


기아가 PV5를 앞세워 일본시장 진출을 알렸다.

일본은 오랫동안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무덤처럼 여겨졌다. 자국 브랜드 충성도가 강하고, 경차와 하이브리드 중심 시장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데다, 수입차조차 살아남기 쉽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는 과거 일본 승용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지 못한 채 철수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런 일본 시장에 기아가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략이 다르다. 세단이나 SUV가 아닌 ‘PBV(Platform Beyond Vehicle)’라는 새로운 영역, 그리고 전동화 상용차 시장을 정조준했다. 그 중심에는 기아 최초의 전용 PBV 모델인 PV5가 있다.

기아는 지난 13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기아 PBV 재팬 도쿄니시 직영점에서 ‘PV5 일본 시장 공식 출시 행사’를 열고 현지 계약 개시를 공식화했다. 행사에는 기아 PBV비즈니스사업부장 김상대 부사장과 기아 PBV 재팬 타지마 야스나리 대표이사를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기아는 이 자리에서 PV5를 앞세운 일본 시장 진출 전략과 향후 PBV 비즈니스 확대 계획을 공개했다.



이번 일본 진출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신차 출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산업을 갖춘 시장이자, 전동화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국가로 평가받아 왔다. 특히 상용 전기 밴 시장은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기아는 바로 이 틈을 공략했다. 일본 정부가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3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소형 전기 밴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자, PBV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판단한 것이다.

PV5는 기존 상용 전기차와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단순히 화물을 싣는 전기 밴이 아니라 ‘차량 그 이상의 플랫폼’을 목표로 개발된 모델이다. 차체와 도어, 테일게이트 등을 모듈 방식으로 구성한 ‘플렉서블 바디 시스템(Flexible Body System)’이 대표적이다. 고객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차체를 조합할 수 있어 물류, 이동 서비스, 캠핑, 소형 비즈니스 등 여러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 일본처럼 좁은 골목과 복잡한 도심 구조가 많은 시장에서는 이런 유연성이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실제로 PV5는 전장 4695mm, 전폭 1895mm 크기에도 회전반경 5.5m를 확보해 일본 도심 환경에 최적화된 기동성을 갖췄다. 일본 현지 충전 인프라에 맞춰 차데모(CHAdeMO) 충전 방식을 기본 적용한 것도 눈에 띈다. 일본은 여전히 차데모 충전 규격 비중이 높기 때문에 현지화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V2L(Vehicle-to-Load)과 V2H(Vehicle-to-Home) 기능도 지원한다. 단순히 전기를 충전하는 차량을 넘어, 재난 상황에서는 이동형 전력 공급원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진과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 특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현실적인 접근이다.

기아는 우선 PV5 패신저와 카고 모델을 일본 시장에 투입한다. 이후 휠체어 접근성을 높인 WAV(Wheelchair Accessible Vehicle) 모델까지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의 고령화 사회 특성을 고려하면 WAV 모델은 단순 파생 모델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2028년에는 상위급 PBV 모델인 PV7까지 추가 투입해 본격적인 PBV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일본 진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현지 파트너십 전략이다. 기아는 일본 종합상사 소지츠(Sojitz)와 오랜 협력 관계를 이어왔고, 지난해에는 소지츠 100% 출자 법인인 ‘기아 PBV 재팬’을 설립했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 내 판매와 서비스 네트워크를 빠르게 구축 중이다. 현재 일본 내 7개 딜러샵과 52개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내에는 11개 딜러샵과 100개 서비스센터 체제로 확대할 계획이다. 판매뿐 아니라 정비와 금융, 충전 인프라까지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고객 경험 전반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기아가 일본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일본 소비자에게 한국차를 판매한다”는 접근이 아니다. 대신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물류 증가와 배송 인력 부족, 지방 교통 공백, 고령화 등에 맞춰 PBV를 하나의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제안하고 있다. 단순한 자동차 판매가 아니라 새로운 이동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전략에 가깝다.



PV5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상품성도 인정받고 있다. 상용차 업계 최고 권위 상으로 꼽히는 ‘2026 세계 올해의 밴(IVOTY)’을 수상했고, 영국 자동차 전문 매체 왓 카(What Car)가 주관한 ‘2026 상용 및 밴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밴’을 포함한 3관왕을 차지했다. 여기에 유로 NCAP 상용 밴 안전 평가 최고 등급인 별 다섯까지 획득하며 상품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사실 일본 자동차 시장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하지만 기아는 이번 PV5를 통해 정면 승부 대신 ‘시장 변화의 빈틈’을 공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생각보다 꽤 현실적이고 치밀하다.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불모지로 불렸던 일본에서, 기아의 PBV 전략이 새로운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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