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편안한데 250마력…하이브리드의 정답을 조금 다르게 풀어낸 르노의 플래그십 크로스오버
“이 차는 숫자로 승부하는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유럽차다운 승차감과 전기차 같은 주행감각을 하이브리드 안에 집어넣은 차다”
에스프리 알핀과 테크노 트림의 차이점
르노 필랑트를 다시 제대로 타봤습니다. 이번에는 한 가지 트림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최상위급인 에스프리 알핀과 새롭게 추가된 테크노를 연이어 시승했습니다. 같은 차체에 같은 250마력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하는데도 두 차를 번갈아 타보니 생각보다 분명한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특히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옵션이나 실내 분위기보다 타이어에서 오는 승차감의 차이였습니다. 필랑트는 처음 마주하면 상당히 독특합니다. 세단처럼 낮고 길게 뻗은 루프라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차체 높이와 공간은 SUV에 가깝습니다. 전장 4,915mm, 전폭 1,890mm, 전고 1,635mm, 휠베이스 2,820mm의 차체라 실제로 보면 꽤 큰데, 높이를 낮춰놓은 비율 때문에 덩치가 숫자만큼 둔해 보이지 않습니다. 르노가 필랑트를 단순한 SUV가 아니라 플래그십 크로스오버라고 부르는 이유를 직접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번 시승에서 먼저 경험한 차는 에스프리 알핀이었습니다. 메탈릭 블랙 루프와 글로시 블랙 어퍼 테일게이트, 20인치 전용 휠, 알핀 특유의 블루 포인트가 더해지면서 확실히 분위기가 다릅니다. 실내 역시 블루·화이트·레드 스티치와 알핀 전용 디테일, 소프트 스웨이드 소재 등이 들어가 있어서 단순히 옵션이 많은 상위 트림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필랑트’라는 느낌을 줍니다. 르노 공식 가격표에서도 에스프리 알핀은 20인치 245/45 R20 저소음 폼 타이어와 전용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아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알핀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편안함입니다. 헤드레스트 일체형 라운지 시트가 몸을 감싸고, 시트 자체가 단순히 푹신하게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허리와 엉덩이를 적당히 지지해 줍니다. 장거리를 달렸을 때 운전자의 피로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시트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2열 역시 휠베이스 2,820mm를 기반으로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고, 트렁크도 기본 633L, 2열을 접으면 최대 2,050L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시동을 걸고 움직여보면 필랑트의 성격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1.5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에 100kW 구동모터와 60kW 보조모터를 조합한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시스템 최고출력은 250마력입니다. 배터리는 1.64kWh이고 공인 복합연비는 15.1km/L입니다. 그런데 이 차를 처음 타면서 ‘250마력이 상당히 강하다’는 생각부터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출발할 때 상당히 조용하고 부드럽다는 느낌이 먼저 옵니다. 신호대기 후 가속페달을 밟으면 전기모터가 먼저 차를 밀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이후 속도가 올라가면서 엔진이 개입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상당히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르노가 도심 주행에서 최대 75%까지 EV 모드로 달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 실제로 운전해보면 이 차가 왜 전기차와 비슷한 주행감각을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특히 저속에서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솔린 엔진이 먼저 차를 끌고 가는 전통적인 하이브리드와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전기차처럼 조용하게 출발하고, 필요한 순간 엔진이 개입하면서 속도를 이어갑니다. 계기판을 계속 확인하지 않는다면 엔진이 언제 들어왔는지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갈 정도입니다. 르노가 이번 필랑트를 통해 보여주려는 하이브리드의 방향이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속도로로 올라가면 250마력의 힘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차체가 1.8톤이 넘는 큰 크로스오버지만 가속페달을 조금 깊게 밟으면 전기모터가 즉각적으로 힘을 보태면서 속도가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스포츠카처럼 운전자를 자극하는 차는 아닙니다. 필랑트는 빠르게 달리는 재미보다 필요한 순간 충분한 힘을 내면서 탑승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실제 제원상 공차중량은 1,820kg이고 0→100km/h 가속은 8.39초로 안내됩니다.그리고 필랑트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이 승차감입니다. 앞쪽 맥퍼슨 스트럿과 뒤쪽 멀티링크 서스펜션에 주파수 감응형 댐퍼가 적용됐습니다. 맨홀과 요철, 과속방지턱, 도로 이음매처럼 한국에서 흔히 만나는 거친 노면을 지나가 보면 이 차가 왜 승차감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충격을 아예 없애버리는 방식은 아닙니다. 대신 충격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서 실내로 전달하는 느낌입니다. 방지턱을 넘고 난 뒤 차체가 여러 번 출렁이는 것도 상당히 억제되어 있습니다. 편안한데 물렁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운데 흐물거리지도 않습니다. 고속도로에서는 차체가 노면에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 있고, 방향을 바꿀 때도 큰 차체가 한참 뒤에 따라오는 듯한 느낌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필랑트를 스포츠 세단처럼 몰아붙일 필요는 없지만, 필요할 때는 꽤 안정적으로 움직여주는 차입니다.정숙성 역시 필랑트의 성격과 잘 맞습니다. 전 트림에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이 적용되고, 상위 트림에는 이중접합 차음 글래스가 적용됩니다. 에스프리 알핀에서는 여기에 20인치 저소음 폼 타이어와 고급스러운 실내 소재까지 더해지면서 차 안이 상당히 차분합니다.실내에서는 3개의 12.3인치 화면이 이어지는 openR 파노라마 스크린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운전석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동승석까지 화면이 이어지면서 단순한 계기판과 내비게이션을 넘어선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TMAP, 무선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OTT, 웹브라우저, 앱스토어, 게임, 에이닷 오토까지 사용할 수 있어 실제로 타보면 차량의 성격이 상당히 미래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테크노에서도 이 핵심적인 디지털 구성 상당 부분을 기본으로 가져갑니다. 그런데 이번 시승의 진짜 재미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에스프리 알핀을 충분히 타본 뒤 테크노로 바로 바꿔 탔습니다.같은 필랑트이고, 같은 250마력 E-Tech 하이브리드입니다. 엔진과 모터, 배터리, 주파수 감응형 댐퍼까지 기본적인 주행 시스템은 같습니다. 테크노도 19인치 235/50 R19 타이어와 동일한 주파수 감응형 댐퍼를 사용합니다.처음에는 ‘그래봐야 같은 필랑트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막상 움직여보니 미묘하게 느낌이 다릅니다.특히 승차감에서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에스프리 알핀에는 20인치 금호타이어가 장착된 시승차였고, 테크노에는 19인치 휠과 넥센타이어가 장착돼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라면 19인치 타이어를 사용하는 테크노가 편안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휠 크기만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그런데 직접 두 대를 연이어 타보니 단순히 휠 크기만으로 승차감을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타이어의 특성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차체, 같은 서스펜션인데 노면을 받아내는 느낌과 충격을 전달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습니다. 결국 자동차의 승차감은 단순히 ‘몇 인치 휠이냐’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비교시승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이 부분은 숫자만 보고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두 차량을 같은 도로에서 번갈아 타봐야 느낄 수 있는 차이입니다. 그리고 테크노에 올라타면서 또 하나 놀랐던 것은 ‘이게 정말 4천만 원대 필랑트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본 장비가 충분하다는 점입니다.현재 르노코리아 가격표 기준 테크노는 친환경차 세제 혜택 적용 가격이 4,394만9천 원입니다. 같은 기준에서 아이코닉은 4,696만9천 원, 에스프리 알핀은 4,971만9천 원으로 가격 차이가 존재합니다.그런데 테크노라고 해서 필랑트의 핵심적인 장점을 대부분 빼버린 것은 아닙니다.주파수 감응형 댐퍼, 250마력 E-Tech 하이브리드, 360도 3D 어라운드 뷰, 파워 테일게이트, 운전석·동승석 파워시트, 앞좌석 통풍시트, 앞뒤 열선시트, 3존 독립 풀 오토 에어컨, openR 파노라마 스크린, 5G 데이터, TMAP, 무선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에이닷 오토, 알카미스 8스피커 시스템,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까지 기본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알핀을 타다가 테크노로 옮겨 타면 차이가 바로 보입니다. 알핀 특유의 외관 디자인과 20인치 휠,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 전용 인테리어, 앰비언트 라이트, 스마트 룸미러 같은 고급 사양이 빠지거나 달라집니다. 에스프리 알핀에는 BOSE 10스피커 시스템과 AR-HUD 같은 선택 사양도 마련돼 있습니다.하지만 운전하면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필랑트를 구입하는 이유가 알핀이라는 이름과 전용 디자인, 고급 인테리어, 최고급 편의사양 때문이라면 당연히 에스프리 알핀의 만족도가 높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필랑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넓은 공간, 250마력 하이브리드, 부드러운 출발감, 편안한 승차감, 조용한 실내, 풍부한 기본 편의사양이라면 테크노에서도 상당 부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결국 두 트림의 차이는 단순히 ‘좋은 차와 나쁜 차’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필랑트라는 큰 틀 안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의 차이에 가까웠습니다.에스프리 알핀은 확실히 보는 맛이 있습니다.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전용 디자인과 소재, 시트, 휠, 앰비언트 등이 운전자에게 상위 트림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장거리 주행에서는 이런 감성적인 부분도 생각보다 크게 다가옵니다.반면 테크노는 훨씬 현실적입니다. 4천만 원대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차량의 기본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르노 필랑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과 공간, 하이브리드 시스템, 승차감, 정숙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격을 낮췄기 때문입니다.결국 이번에 두 대를 연이어 타보고 나서 필랑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 필랑트를 봤을 때는 ‘르노가 꽤 비싼 플래그십을 내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운전해보고, 다시 테크노까지 번갈아 타보니 이 차가 가지고 있는 진짜 경쟁력은 가격표의 숫자나 250마력이라는 출력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조용하고, 편안하고, 필요할 때 충분히 빠르고, 저속에서는 전기차처럼 움직이는 것.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편안함을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필랑트는 세단처럼 낮고, SUV처럼 공간이 넉넉합니다. 하이브리드지만 출발할 때는 전기차처럼 조용하고, 고속도로에서는 250마력의 힘으로 큰 차체를 무리 없이 끌고 갑니다. 여기에 주파수 감응형 댐퍼와 멀티링크 리어 서스펜션이 노면의 충격을 다듬어주고, ANC와 차음 설계가 실내를 차분하게 만들어줍니다. 공인 복합연비도 15.1km/L로 준대형급 차체와 250마력 시스템 출력을 생각하면 효율을 함께 챙긴 구성입니다.이번 비교시승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같은 필랑트인데도 타이어 하나가 주행감각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에스프리 알핀과 테크노를 따로 탔다면 아마 그냥 ‘테크노도 편안하네’ 정도로 넘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두 차를 연이어 같은 감각으로 비교하니 승차감의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그래서 필랑트를 고민하는 분이라면 단순히 카탈로그의 옵션표만 보고 결정하기보다는 가능하다면 실제로 두 트림을 모두 타보셨으면 합니다.에스프리 알핀은 필랑트가 보여줄 수 있는 고급스러움과 개성을 최대한 끌어낸 모델이고, 테크노는 필랑트의 핵심적인 주행 경험을 보다 현실적인 가격으로 가져온 모델에 가깝습니다.그리고 저는 이번 시승을 통해 필랑트가 ‘250마력 하이브리드’라는 숫자로만 설명되는 차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필랑트의 진짜 매력은 숫자보다 움직임에 있습니다. 전기차처럼 조용하게 출발하고, 엔진과 모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요철에서는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내고, 고속도로에서는 차체를 안정적으로 잡아줍니다. 여기에 에스프리 알핀은 디자인과 감성적인 만족을 더하고, 테크노는 4천만 원대라는 가격으로 필랑트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을 넓혔습니다.필랑트는 단순히 ‘르노의 플래그십이라서 비싼 차’라고 보기보다는 편안함과 정숙성, 전기차 같은 하이브리드 주행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직접 경험해볼 만한 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승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같은 필랑트인데, 타이어가 달라지니 느낌도 달라진다”르노코리아가 강조하는 필랑트의 핵심 역시 단순한 연비 수치보다는 전기차처럼 움직이는 하이브리드의 작동감과 승차감에 맞춰져 있습니다. 실제 시승에서도 정차 후 출발, 저속 주행, 중속 가속, 고속도로 합류와 추월 상황에서 이 차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