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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ES90이 보여준 미래, 클래식카에서 전기 MPV까지 99년의 시간 위에 선 전기차

임재범 기자 발행일 2026-04-28 15:05:37
PV444에서 ES90까지. 볼보 전시관이 완성한 하나의 서사
베이징 모터쇼에서 만난 볼보 ES90. 고요함 속에 숨은 퍼포먼스
전기차 시대에도 세단은 살아있다… 볼보 ES90


2026 베이징 국제 모터쇼 현장. 전시장 안은 수많은 신차들로 가득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시선을 끄는 공간이 있었다. 볼보 전시관이다.
단순히 신차를 나열한 부스가 아니라, 브랜드의 시간과 방향성을 함께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입구부터 강조되고 있는 ‘99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연혁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1927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시작된 볼보는 ‘안전’이라는 단어를 자동차의 본질로 끌어올린 브랜드다. 3점식 안전벨트를 전 세계에 무상 공개하며 자동차 산업의 기준을 바꿨고, 이후에도 충돌 안전 구조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까지, 사람을 중심에 둔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전동화로 빠르게 전환되는 지금의 흐름 속에서도 그 철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전시관 한쪽에는 그 시간을 상징하는 클래식카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모델은 스웨덴의 ‘국민차’로 불리는 볼보 PV444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등장한 이 작은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양산형 안전 케이지 구조와 접합식(이중 적층) 앞유리를 적용하며, ‘일반 가정을 위한 안전한 자동차’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20년이 넘는 생산 기간 동안 약 44만 대 이상이 판매되며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무엇보다 스웨덴 대중에게 자동차를 일상으로 끌어들인 상징적인 존재였다.



최신 전기차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공간 속에서, 이 작은 클래식카는 오히려 브랜드의 과거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기술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사람을 위한 자동차’라는 출발점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ES90과 EX90이 나란히 조명을 받고 있었다.
ES90은 ‘세단’이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있었다. 조명 아래 은은하게 드러난 차체는 낮고 길게 뻗어 있었고, 패스트백으로 떨어지는 루프라인은 마치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트 포지션은 예상보다 높아, 세단과 SUV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균형, CUV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낯설지만 자연스럽고, 조용하지만 강하게 남는 첫인상이었다.



외관보다 더 깊은 변화는 실내다. 문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웠다. EX90과 같은 흐름이다.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덜어낸 미니멀한 구성 속에서 대형 디스플레이 하나가 중심을 잡고 있었고, 버튼이 사라진 자리는 차분한 여백으로 채워져 있었다. 손끝으로 닿는 소재와 마감은 여전히 볼보 특유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위에 얹힌 디지털 경험은 훨씬 더 미래지향적이었다.
구글 기반 인포테인먼트와 OTA 업데이트를 통해 시간이 흐를수록 차가 스스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이 차는 더 이상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기술적인 부분을 살펴볼수록 ES90이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엔비디아 기반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이 차량 전반을 통합 제어하며,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싱글 모터 후륜구동부터 듀얼 모터 AWD, 퍼포먼스 AWD까지 구성되며 약 333마력에서 최대 680마력에 이르는 출력, 그리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약 3.9초라는 성능은 이 차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고요함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전동화 시대의 핵심 요소들도 빠짐없다. 800V 고전압 시스템, 최대 약 106kWh 배터리, 1회 충전 시 약 700~755km(WLTP 기준)에 이르는 주행거리까지, 장거리 이동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였다. 전장 약 5,000mm, 휠베이스 약 3,100mm의 차체는 플래그십 세단다운 여유를 제공하며, 실제 2열 공간은 단순히 넓다는 표현을 넘어선 ‘여유로움’을 전달한다.



그리고 전시관 한편에서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모델이 시선을 끌었다. 바로 전기 MPV EM90이다. ES90이 미래 세단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EM90은 이동 공간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넓은 실내를 기반으로 한 라운지형 구성, 고급스러운 소재, 그리고 탑승자 중심의 경험 설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머무는 공간’에 가까웠다. 특히 중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된 모델답게 2열 중심의 VIP 구성과 정숙성, 안락함에 집중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EM90의 한국 시장 출시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중국 시장 중심 전략 모델의 성격이 강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고급 MPV 및 프리미엄 패밀리카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전동화와 프리미엄 공간 경험이라는 흐름이 맞물린다면, 향후 도입을 검토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자연스럽게 한국 시장에서의 ES90도 그려졌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2026년 하반기 국내 출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가격은 글로벌 기준을 감안할 때 1억 원 초반대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SUV 중심으로 재편된 전기차 시장 속에서, ES90은 세단이라는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모델이다. 단순한 선택지의 추가라기보다, 시장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존재에 가깝다.

베이징 모터쇼 현장에서 마주한 볼보 전시관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졌다. 99년의 시간 위에 쌓인 철학, 그리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기술의 방향성. 자동차는 더 이상 기계에 머무르지 않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는 사실. PV444에서 ES90, 그리고 EM90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그 메시지는 더욱 또렷해졌다.



화려하게 과시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 감성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게 만든다는 것. 이곳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신차 관람을 넘어, 앞으로의 자동차를 미리 체험한 순간에 가까웠다.


중국(베이징)= 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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