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3를 엔트리급으로 K9까지 이어졌지요. 해외시장에는 신형 프라이드(세단)를 베이스로한 K2가 팔리기도 합니다.
차 이름에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하는 일은 많습니다. 차 회사를 알리고, 차 이름을 또 한 번 알려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면서 라인업 구성에 도움을 주지요. 독일차들이 주로 쓰는 방식인데 신흥시장에서 적잖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 K시리즈로 세단 라인업 완성한 기아차
그런데 어쩌나요. 여전히 자동차 업계에 오래 몸담아왔던 올드맨들은 이 K시리즈, 특히 K3를 보면서 연상하는 차가 있습니다. 바로 기아차, 아니 기아산업의 K303입니다.

기아산업 K303. 브리샤 후속으로 등장했었다.
이제는 잊혀진 이름입니다. 지금이야 한 지붕이지만 한때 현대차와 기아산업이 경쟁선상에 있었을 무렵, K303은 기아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벌써 40년이 다 된 이야기입니다.
1974년 기아산업은 일본 마쓰다를 부지런히 오가며 소형차 '파밀리아'의 기술을 배워왔습니다. 작고 앙증맞은 첫 차에게'브리샤'라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이름도 붙였는데요.
국산부품이 80%를 넘겼지만 현대차 포니처럼 ‘고유모델’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현대차는 포니를 개발하면서 이리저리 발주를 넣고 디자인을 만들어 새 차를 개발했습니다. 반면 기아산업은 일본 마쓰다 파밀리아를 고스란히 들여왔지요. 개발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결코 ‘우리 차’는 아니었습니다.
- 1974년 마쓰다 파밀리아 베이스로 브리샤 선보여
직렬 4기통 1300cc 엔진은 최고출력 73마력이라는 고성능(?)을 뿜었습니다. 마쓰다 엔진을 들여온 덕에 보어와 스트로크가 동일한 이른바 ‘스퀘어 엔진’ 타입이었습니다.
이쯤해서 의문이 생깁니다. 기아산업이니 K를 쓰는 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왜 303이라는 숫자가 붙었을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또 허무하기도 합니다.
현재 국내 수입차 업계 임원으로 몸담고 있는, 한때 기아자동차 상품기획팀 일원이었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하고 있네요. 맞아요. K303이 있었지요. 코드네임이요? 그때는 그런 것 없었어요. 그냥 제품에 번호를 붙여서 불렀거든요. 브리샤 후속을 개발할 때였는데 K는 기아가 맞습니다. 디자인 후보로 301과 302 그리고 303이 있었어요. 그 중에서 세 번째 디자인이 채택됐어요. 그렇게 K303이 된 것이지요."
이밖에 마쓰다 그랜드 파밀리아 808을 베이스로한 덕에 비슷한 이름으로 내수시장에 새 차를 선보이려는 전략도 담겨있었다는 후문입니다.
K303은 당시 기아산업의 자존심이었습니다. 프론트 그릴을 뾰족하게 다듬어낸 모습을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파격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볼륨감 넘치는 근육질(?) 보디는 첨단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앞부터 뒤까지 넘실거리며 이어지는 벨트라인은 당시 기준으로 첨단이었다. (사진출처=광고연구원)
- 전두환 정권의 공업합리화 조치로 소형차 생산 중단
1970년대 말 12.12 사태 후 군부정권은 새한(이후 대우차)에게 중형차를 전담케 했습니다. 현대차에게는 소형차를 만들 수 있는 특권을 주었지요. 기아산업는 상용차를 담당케 했고 거화(이후 동아를 거쳐 쌍용차가 됩니다)에게는 사륜구동과 특장차를 전문으로 개발하게 했습니다. 차 회사가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사실 현대에 대한 특권이나 다름없었지요. 이 모든 걸 멋지게 포장한 법이 바로 전두환 정권 당시 ‘공업합리화’ 조치였습니다.
그렇게 K303이 후속모델 없이 단종됩니다. 요즘 나오는 K3를 두고서 "그 옛날 K303 생각이 난다“면 지금 현대기아차 신입 직원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우뚱 하겠지요.
맞습니다. 요즘 K3(심지어 미국에서는 포르테라고 불립니다)는 그 옛날 K303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때 그 차를 개발했던 당시 직원들도 지금 기아차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아차 K3는 미국에서 포르테로 팔립니다. 조만간 4도어 세단에 이어 터보 엔진을 얹은 쿠페도 등장한다.
기아차 아니 기아산업을 기억하는 올드보이들은 여전히 K303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K3가 반짝거리며 거리를 누비는 지금, 이보다 한참 오래 전에 기아산업의 자존심 'K303'이 있었다고.
여러분은 그때, 그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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