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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현대차·기아 혁신의 심장, 남양기술연구소, 극한을 빚어 미래 모빌리티를 완성하다

임재범 기자 발행일 2025-07-26 16:44:30


치열한 글로벌 전기차 경쟁 속에서 현대차·기아가 한발 앞서 나가는 이유, 그 핵심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남양기술연구소에 있다. 이곳은 단순히 차량을 시험하는 곳을 넘어, 바람을 다듬고, 온도를 제어하며, 진동을 통제하고, 소리를 디자인하며 ‘차를 빚는 공간’이다. 

지난 23일, 현대차·기아는 이곳의 핵심 시설들을 공개하며 그들이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지 그 원동력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723만 대 판매로 글로벌 3위를 기록하며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이오닉 5부터 EV3까지,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자동차 수상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의 전동화 경쟁력의 중심에는 국내 최대 규모 연구개발 거점인 남양기술연구소가 있다. 1996년 설립된 이곳은 신차 및 신기술 개발, 디자인, 설계, 시험, 평가 등 차량 개발 전 과정을 총괄하며 미래 모빌리티 전략의 핵심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중국 신생 업체들의 거센 추격 속에서 현대차·기아는 품질과 성능, 사용자 경험 전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극한의 주행 환경과 조건을 모사한 시험을 통해 차량의 신뢰성과 감성 품질까지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그들의 핵심 전략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공기역학의 비밀: 공력시험동

남양기술연구소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력 성능을 구현하는 '공력시험동'이었다. 약 6,000㎡(축구장 하나 크기) 규모의 이곳은 바람과 차량의 완벽한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공간이다.

핵심 설비는 단연 3,400마력의 대형 송풍기다. 이 송풍기는 차량 속도 기준 시속 200km에 달하는 강풍을 만들어낸다.  놀라운 점은 시속 100km 바람을 만들 때 발생하는 소음이 일반 사무실 수준인 약 54dB이라는 것. 소음 최소화를 위해 직경 8.4m에 달하는 송풍기 날개는 탄소섬유 복합 소재로 제작되었다. 1회 작동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무려 4천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차량 주행 시 지면 환경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시험실 바닥에는 총 5개의 회전 벨트가 설치된 턴테이블이 있어, 바퀴의 구동은 물론 지면과 차량 하부 사이에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까지 정밀하게 재현하여 신뢰도 높은 공력 성능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크게 항력(Drag)과 양력(Lift)을 측정하는 '공력 성능 평가'와 차량 후면에 생기는 공기 흐름인 후류(Wake)를 분석하는 '후류 최적화 평가'가 이뤄진다. 전비와 가속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항력'과 주행 안정성과 직결되는 '양력', 그리고 후면에서 차량을 당기는 힘을 발생시켜 주행 안정성과 전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후류'를 최적화하는 것이 전기차 공력 성능 향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의 공력 기술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에어로 챌린지 카'였다. 이 콘셉트카는 세계 최저 공기저항계수(Cd)인 0.144를 달성했다. 이는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초저항력 콘셉트카가 0.17~0.19 수준임을 감안할 때 압도적인 수치다. 액티브 카울 커버, 액티브 사이드 블레이드(차체 뒷바퀴 차축에서 차체 끝까지의 거리인 리어오버행을 40cm 연장),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 액티브 리어 디퓨져 등 각각의 기술이 함께 작동할 때 최적의 공력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유동 가시화 시험'을 통해 기술 작동 시 공기 흐름 변화와 공력 성능 개선 효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극한을 실험하다: 환경시험동 (저온시험동 포함)

전기차는 배터리의 특성상 외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대차·기아의 '환경시험동'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어떤 기후 조건에서도 최적의 성능을 보장하기 위한 첨병이다. 이곳은 자동차의 열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모든 시스템을 검증하는 출발점이 된다.

 

특히 이곳에서는 60도의 뜨거운 사막 환경부터 영하 20도, 심지어 영하 30도까지의 혹한 환경을 구현하여 전기차의 성능과 품질을 정밀하게 검증한다.

시속 140km의 강풍 속에서 눈보라를 맞거나, 뜨겁게 달아오르고 차갑게 식기를 반복하며 다이나모 위를 쉬지 않고 달리는 테스트는 차량이 마주할 수 있는 극한의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러한 엄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대차·기아는 어떤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다.

 

감성적 주행 경험을 완성하다: NVH동

전기차 시대에는 단순히 조용한 것을 넘어, '감성적인 이동 경험'이 중요해진다. 'NVH동'은 소음과 진동을 정밀하게 해석하고 차량의 감성 품질을 디자인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주행 사운드 등을 공간 음향으로 가청화하는 '몰입음향 청취실'이 핵심이다. 3차원 스피커 어레이와 실시간 제어 시스템을 활용하여 차량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소리까지 분석하고, 운전자와 탑승자가 가장 쾌적하게 느낄 수 있는 소리 환경을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정숙함을 넘어 '좋은 소리'를 찾아내는 NVH동의 노력은 현대차·기아가 지향하는 '프리미엄 감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타협 없는 주행 철학이 깃든: R&H성능개발동

차량의 '달리는 즐거움'과 '안정감'은 'R&H성능개발동'에서 완성된다.



이곳은 현대차그룹의 타협 없는 주행 철학이 담긴 곳이다. 좌우로 길게 뻗은 복도에는 시험 장비를 제어하는 컴퓨터와 모니터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복도 양옆으로는 수많은 시험 장비들이 분주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차량의 핸들링과 승차감 성능을 개발하며, 운전자가 느끼는 미세한 움직임과 반응까지 최적화하여 최고의 주행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된다. 차량의 운동 성능과 주행 안정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 바로 이곳 R&H성능개발동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미래를 빚는 공간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의 각 시험동은 저마다의 역할을 통해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기술력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동전 하나도 감지'하는 정밀함으로 바람을 다듬고, 극한의 온도를 넘나들며 차량의 한계를 시험하고, 미세한 소리 하나까지 디자인하며 '차를 빚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혹독한 검증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현대차·기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경험의 가치'를 제공하는 미래 모빌리티를 완성해가고 있다.

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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