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리포트=김준형 자동차칼럼니스트]대우 에스페로 1.5 DOHC가 최초, 진정한 의미의 국내 최초 다운사이징
르노삼성 SM5 TCE가 요즘 이야깃거리입니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환경문제까지 적잖은 이슈가 되면서 엔진 사이즈를 줄인, 그래서 세금과 연비를 아껴볼 수 있는 새 모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는 또 다른 이유는 배기량을 줄인 작은 엔진이 넉넉한 힘을 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사실상 엔진 다운사이징은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펴져나가기 시작했고 국내에도 적잖게 다운사이징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요. 여기에 기름값 걱정이 없는 미국차들도 차츰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넉넉한 배기량을 인심으로 여겼던 이들조차 작은 엔진을 커다란 차체에 겁 없이 장착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한때 빅3로 불렸던(이제는 아닙니다) 미국 토종 메이커들은 일본과 한국 메이커에게 적지 않은 자국시장을 빼앗겨 왔습니다.
이렇게 엔진 배기량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 르노삼성이 선보인 2000cc급 중형차의 다운사이징은 이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르노삼성 역시 국내 최초의 중형차 다운사이징을 앞세워 대대적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잠시지만 침체기를 겪고 있는 르노삼성에게는 단비같은 존재입니다. 르노삼성이 새 모델을 앞세워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GM의 J플랫폼 바탕으로 베르토네가 디자인해
다만 한 가지는 꼭 짚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르노삼성 SM5는 국내 최초의 중형차 다운사이징이 아닙니다. 국내에는 이미 2000cc 중형차가 배기량을 준중형차급으로 줄인 역사가 있었던 것이지요. 바로 대우차 에스페로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자동차 혁명, 이른바 ‘모터리제이션’이 시작됐습니다. 작은 차 프라이드(1세대)가 등장하면서 당시 생활수준으로 일반 월급쟁이도 몇 달 고생해 돈을 모으면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이 무렵은 당시 대우자동차는 현대차가 추격해오던(당시 중형차 시장은 대우차 인기가 더 높았습니다) 중형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당시 중형차는 고급차를 대변하며 무겁고 육중한 몸매를 앞세웠습니다. 이를 역으로 이용해 가볍고 경쾌하게 잘 달리는, 그러면서도 날렵한 디자인에 세련미 넘치는 중형차 개발에 나섰던 것이지요.
GM의 오펠 라인업을 참고하고 J플랫폼을 이용했습니다. 디자인은 이태리 자동차 디자이너 ‘베르토네’에게 디자인을 맡긴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시 이름난 이태리 디자이너는 포니를 그려냈던 쥬지아로 였는데요. 대우차가 여기에 맞서 이태리의 또다른 디자이너를 선정한 것이지요. 에스페로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국내 승용차 가운데 처음으로 공기저항계수 Cd 0.29를 기록하며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줬습니다. 시트로엥 사라를 벤치마킹한 날렵한 디자인은 마(魔)의 0.30의 벽을 무너트린 의미 있는 모델이기도 하지요. 그 디자인은 지금봐도 어색하지 않고 멋져 보입니다.
◇ 2.0 중형차에서 출력 높인 1.5 DOHC로
당시 에스페로는 직렬 4기통 2000cc SOHC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110마력을 냈습니다. 자연흡기가 대세였던 당시 기준으로 모자람이 없던 엔진이었지요. 당시 기준, 최고출력 100마력을 넘기는 차는 고성능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출시와 동시에 에스페로는 광고 카피로 ‘2000cc 新중형세단’을 앞세웠습니다. 차 크기는 넉넉했지만 날렵한 디자인 탓에 사장님들이 주로 타는 중형차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1년이 지나지 않았던 1991년 대우차가 마침내 국내 최초의 다운사이징을 시도합니다. 2000cc 중형차에 1500cc 엔진을 얹어 출시한 것인데요
요즘도 SM5 1.6이 이토록 이슈인데 당시는 어떠했는지 감이 오겠지요. 세상은 뒤집어졌고 파격적인 대우차의 행보에 자동차 업계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만한 사이즈의 1500cc 자동차는 적잖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엔진 배기량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다보니 덩치만 크고 엔진은 작은, 이른바 국내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중소형차였습니다. 현대차 스텔라 1.5와 대우차 로얄 프린스와 XQ(후에 듀크로 바뀝니다) 1.5가 있었지요.
그러나 이들은 다운사이징과 거리가 먼, 엔진이 작은만큼 출력도 징그럽게 안 나왔던 모델이었습니다.
반면 에스페로 1.5 DOHC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엔진 배기량이 작아졌지만 출력을 보완했습니다. 2000cc 엔진에 흡기와 배기 밸브가 하나씩 달린 SOHC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배기량을 줄인 에스페로 1.5는 이보다 한 단계 진보한 DOHC 방식을 썼지요. 이름 그대로 엔진 위에서 흡기와 배기밸브를 붙잡는 축인 캠 샤프트가 2개인 엔진인데요. 당연히 흡기와 배기밸브가 하나씩 더 달린 덕에 더 많은 공기가 엔진으로 빨려들어가고, 또 배기밸브가 하나씩 더 장착되면서 배기 저항을 줄였습니다. 당시 1500cc 엔진으로는 꽤 높았던 최고출력 100마력을 기록했습니다. 엔진은 작아졌지만 출력은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지요.
◇ 2000cc 자연흡기를 위협했던 1.5 DOHC
엔진 저항은 조금 거칠었습니다. 2000cc 자연흡기 엔진이 부드럽게 가속하고 회전수를 끌어올렸던 것과 달리 작은 엔진으로 높은 출력을 뽑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최대토크도 3500rpm 언저리에서 뿜어내는 탓에 꾸준히 고회전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엔진룸을 열어보면 커다란 엔진 헤드 탓에 엔진 사이즈도 꽤 육중했었답니다.
이후 에스페로는 1.5 DOHC가 주축이 됩니다. 나중에 2000cc 모델은 단종이 됐고 이 자리를 1800cc 엔진이 대체하게 됐지요.
결국 2000cc로 시작한 중형세단 에스페로는 준중형차로 차 등급이 내려오게 됩니다. 혹자는 대우차가 아닌 현대차에서 나왔다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을 모델로 손꼽습니다. 그만큼 상품성과 디자인, 패키징과 제품기획력에서 획기적인 모델이었습니다.
그만큼 에스페로는 대우자동차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모델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우차가 GM대우로 또 다시 한국GM으로 바뀌면서 존재의 당위성은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한국GM 입장에서 그 옛날 대우 에스페로를 내세울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한때 잘 달리기로 이름났던 기아차(당시는 기아산업이었습니다) 2.0 콩코드에 대적할 만한 경쾌한 중형차는 에스페로 2.0이 유일했습니다. 현대차가 덩치 큰 Y2 쏘나타로 대적할 무렵, 진짜 다이내믹 드라이브를 원했던 마니아는 대우 에스페로를 찾았습니다.
국내 최초의 2000cc 중형차의 다운사이징은 르노삼성 SM5 1.6 TCE가 아닙니다. 대우차 에스페로 1.5 DOHC였습니다. 회사가 사라졌다고 그 차가 갖는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페로 1.5 DOHC가 준중형차의 강자로 고속도로를 주름잡던 그 때…그 때를 아십니까?
자동차 전문기자 김준형을 소개합니다. 글자도 모르던 유아시절부터 자동차를 꿈꿔왔던 그는 이른바 ‘모터키즈’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기아 브리샤를 몰래 운전하면서 시작한 자동차에 대한 꿈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1999년, 십수년 동안 탐독했던 자동차 전문지 월간<자동차생활> 취재기자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저널리즘에 대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생활 계열사인 월간<4WD&RV>와 수입차 전문 <스트라다>의 창간 TF멤버로 활약하는 등 자동차 저널리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갖췄습니다.
10년 가까이 국내외 주요 국제모터쇼 취재는 물론 다양한 글로벌 드라이빙 이벤트에 주요 인물로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와 메커니즘, 서킷 테스트 등을 고정적으로 이행하며 자동차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도 갖췄습니다. 나아가 국내 전문기자 가운데 유일한 오프로드 드라이빙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2009년부터는 석간 경제신문 <이투데이> 산업부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이제 자동차 본연의 매력을 넘어, 자동차산업과 메이커의 경영전략, 글로벌 주요 산업구도 전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경영전략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각종 완성차 메이커의 M&A를 비롯해 인수의향전략(LOI) 등을 [단독]으로 보도하는 등 차산업에 대한 역량 역시 그의 마니아 기질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이투데이> 산업부 차장으로서,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국내 주요그룹 산업 전반에 관한 기사를 매일 출고하며 산업기자로서의 위치를 다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동차 마니아의 기질은 버리지 않고 있는 덕에, <카리포트>에서는 그의 넓고 해박한 자동차 관련 지식을 공유하게 됐습니다.
자동차 전문기자 김준형과 함께, 대한민국 자동차 경쟁력의 근간이된 그 옛날의 자동차를 되짚어봅니다. [그 때…그 때를 아십니까?]라는 주제로 6개월 동안 선보일 김준형 기자의 독특한 필력을 많은 <카리포트> 독자들이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