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출발해 의정부의 한 카페까지 이동한 뒤 다시 DDP로 돌아오는 왕복 코스로 볼보의 새로운 플래그십 순수 전기 SUV, EX90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번 시승차는 7인승 기준 최고출력 680마력, 최대토크 81.1kg·m을 내는 트윈 모터 퍼포먼스 모델이었습니다.
전장 5,040mm, 전폭 1,965mm, 전고 1,740mm에 휠베이스는 2,985mm, 공차중량은 2,730kg에 달하는 대형 SUV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아 DDP를 빠져나오는 순간 느껴지는 것은 거대한 차체에서 예상했던 묵직함이나 둔함이 아니라 의외로 가볍고 매끄러운 움직임이었습니다. 특히 전기차답게 별도의 시동 버튼을 누르는 과정 없이 시트에 앉아 브레이크를 밟고 칼럼식 기어를 D에 넣으면 출발 준비가 끝납니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자 2.7톤이 넘는 차체가 마치 무게를 잊은 듯 부드럽게 앞으로 미끄러져 나갑니다. 680마력이라는 숫자만 보면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을 예상하게 되지만 실제 도심에서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가속페달을 밟는 만큼 정확하게 속도가 올라가고, 신호가 반복되는 도심에서도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가 운전자와 동승자의 몸을 앞으로 잡아당기거나 울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전·후륜에 각각 하나씩 배치된 트윈 모터가 AWD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필요한 만큼의 힘을 즉각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상당히 매끄럽습니다.
공식 제원상 최고출력은 680마력, 최대토크는 81.1kg·m이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초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차를 운전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4.2초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엄청난 성능을 운전자가 필요할 때만 꺼내 쓸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DDP 주변의 복잡한 도로에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대형 SUV처럼 움직이다가 도로가 열리고 가속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전기모터가 가진 강력한 토크가 한꺼번에 살아납니다.
변속기가 단수를 바꾸는 과정도 없고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는 소리도 없습니다. 그저 페달을 밟는 순간 차체가 시트에 몸을 밀어 넣으면서 속도가 빠르게 올라갑니다. 특히 이때 인상적인 것은 가속감에 비해 실내가 지나치게 평온하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고성능 SUV라면 가속 과정에서 엔진음과 배기음이 함께 커지면서 속도감을 전달하지만 EX90은 그런 자극이 거의 없습니다. 조용한 실내에서 계기판의 속도 숫자만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에 오히려 운전자가 체감하는 속도보다 실제 속도가 더 빠르게 올라가는 느낌까지 듭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는 속도계를 의식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의정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EX90의 또 다른 매력이 드러났습니다. 이 차는 빠른 SUV이면서 동시에 장거리 주행에 최적화된 편안한 SUV에 가깝습니다.
특히 울트라 트림에 적용된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과 액티브 섀시가 2.7톤이 넘는 차체를 상당히 안정적으로 제어합니다. 볼보의 자료에서도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은 부드러운 승차감과 편안한 주행 제어감을 제공하면서 주행 상황에 따라 안정성과 접지력을 유지하도록 설계됐으며, 고속 주행에서는 차체를 낮춰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 도로에서 교량 이음새나 반복적인 요철을 지나보면 이 서스펜션의 성격을 조금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큰 충격을 무조건 푹신하게 받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충격을 한 번 부드럽게 흡수한 뒤 차체를 빠르게 안정시키는 느낌입니다.
방지턱을 넘을 때도 처음에는 ‘툭’ 하고 충격을 받아내지만 방지턱을 내려온 이후 차체가 계속 출렁이지 않습니다. 무거운 대형 SUV에서 흔히 느껴지는 ‘출렁임’이 상당히 잘 억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EX90의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을 단순히 부드러운 에어 서스펜션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부드럽지만 차체를 놓치지 않는 서스펜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느껴졌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변경할 때도 차체가 크게 기울어지는 느낌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빠른 속도로 커브에 진입했을 때도 2.7톤이라는 무게가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스포츠카처럼 노면 정보를 손끝으로 전달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EX90은 처음부터 그런 방향의 자동차가 아닙니다. 노면을 세세하게 전달하기보다 노면의 불쾌한 움직임을 걸러내고 운전자와 탑승자에게 편안한 움직임을 전달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내와 자동차전용도로, 고속도로를 차례로 경험하면서 이 차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시내에서는 680마력이라는 숫자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차분하고,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필요할 때 강력한 힘을 꺼내 쓸 수 있으며,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가 안정적으로 노면을 눌러주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무엇보다 NVH 성능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울트라 트림에는 이중 접합 라미네이티드 윈도가 적용되어 있고, 전기차 특유의 파워트레인 소음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차체의 방음 설계까지 더해지면서 실내가 상당히 조용합니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여도 풍절음이 갑자기 커지지 않고 타이어가 노면을 타고 지나가는 소리 역시 상당히 억제되어 있습니다. 동승자와 대화할 때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않아도 되고, 음악을 틀었을 때도 작은 소리까지 비교적 선명하게 들립니다.
여기에 울트라 트림의 Bowers & Wilkins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은 EX90의 조용한 실내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앞좌석 헤드레스트 스피커를 포함해 1,610W급 25개의 독립 스피커가 배치되고 돌비 애트모스 공간 음향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단순히 소리가 큰 오디오가 아니라 실내 전체를 하나의 음향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입니다. 음악을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동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보다 조용한 라운지에 앉아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워집니다.
실내 디자인 역시 이런 성격과 잘 맞습니다. 운전석에 앉으면 복잡한 버튼을 잔뜩 배치한 전통적인 고급 SUV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우드 데코와 수평적인 디자인, 은은한 조명, 세로형 14.5인치 센터 디스플레이가 어우러지면서 북유럽 가구를 연상시키는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울트라 트림에는 나파 가죽 시트가 적용되고 앞좌석 전동 사이드 서포트와 마사지 기능, 열선 및 통풍 기능도 지원됩니다. 여기에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 루프를 버튼 하나로 조절할 수 있어 햇빛이 강할 때는 눈부심을 줄이고 필요할 때는 넓은 개방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장점은 2열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평평한 바닥 덕분에 2열 승객의 발 공간이 넓고, 6인승 모델은 2열 캡틴 시트를 통해 보다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합니다. 3열까지 갖춘 대형 패밀리 SUV인 만큼 가족 단위 장거리 여행에서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트렁크는 3열 사용 시 324L이며 2열과 3열을 접으면 7인승 기준 최대 2,135L까지 확장되고, 별도로 46L 프렁크도 마련돼 있습니다. 외관을 다시 살펴보면 EX90의 디자인은 실내와 마찬가지로 화려함보다 기능과 정제미에 초점을 맞췄다는 느낌입니다.
전면에는 볼보의 상징인 토르의 망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HD 픽셀 헤드램프가 자리하고 있으며, 차량을 잠그거나 해제할 때 독특한 웰컴·페어웰 라이트 시퀀스가 작동합니다. 그릴을 없애고 전면을 매끄럽게 다듬었으며 플러시 도어 핸들과 매끈하게 이어지는 측면 디자인을 통해 대형 SUV임에도 상당히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공기저항계수는 0.29Cd로,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전기차의 효율과 주행거리를 고려한 결과입니다.
루프 앞쪽에 자리한 레이다 센서는 EX90의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요소입니다. 차량의 주변을 바라보는 다양한 센서와 함께 EX90은 단순히 운전자가 조작하는 자동차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운전자의 상태를 이해하도록 설계됐습니다. 5개의 카메라와 5개의 레이더, 12개의 초음파 센서로 구성된 센서 세트와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 등이 적용돼 있습니다. 특히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은 차량 안에 어린아이나 반려동물이 남겨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탑승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이런 부분은 일반적인 시승에서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EX90이라는 자동차가 어떤 철학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전기 SUV인 만큼 충전 시스템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EX90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는 106kWh NCM 배터리를 사용하며 국내 인증 기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최대 448km입니다. 복합 전비는 3.8km/kWh, 도심 4.0km/kWh, 고속도로 3.6km/kWh로 인증됐습니다.
특히 800V 배터리 시스템을 적용해 최대 350kW DC 급속충전을 지원하며, 볼보는 10%에서 80%까지 약 22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실제 충전 시간은 충전기 출력과 배터리 온도, 충전 상태, 외부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106kWh(CATL)라는 대용량 배터리는 장거리 주행에서 심리적인 여유를 만들어주고, 800V 시스템과 고출력 급속충전은 대형 전기 SUV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전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요소입니다. 주행 중에는 회생제동을 활용해 감속할 수 있고, 전기차 특유의 매끄러운 감속감과 조용한 주행감이 어우러지면서 도심에서는 특히 편안한 운전이 가능했습니다.
의정부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처음 출발할 때보다 EX90이라는 차의 성격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차는 680마력이라는 숫자를 앞세워 운전자
를 흥분시키는 고성능 SUV가 아닙니다. 필요하면 스포츠카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평소에는 그 힘을 숨긴 채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큰 차체와 2.7톤이 넘는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반응 덕분에 도심에서는 의외로 가볍게 움직이고, 고속도로에서는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과 AWD가 차체를 안정적으로 붙잡아줍니다. 그리고 속도가 올라갈수록 오히려 실내는 더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이번 왕복 시승에서 경험한 EX90의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가격은 7인승 기준 1억 2,120만원, 6인승 기준 1억 2,320만원으로 결코 만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680마력의 트윈 모터 AWD, 106kWh 배터리, 800V 충전 시스템,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 6·7인승 공간 구성, Bowers & Wilkins 오디오,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 루프, 첨단 안전 센서와 소프트웨어 시스템까지 고려하면 EX90이 단순히 ‘비싼 전기 SUV’로만 설명되는 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볼보 EX90은 ‘680마력의 괴력을 북유럽식 안락함과 안전으로 감싸낸 차세대 플래그십 패밀리 전기 SUV’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빠르지만 과격하지 않고, 크지만 둔하지 않으며, 고급스럽지만 화려함보다 편안함을 앞세운 자동차였습니다.
무엇보다 680마력이라는 엄청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운전자에게 그 힘을 끊임없이 과시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가속 순간의 짜릿함이 아니라, 그 가속이 끝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고 편안하게 도로를 달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볼보 EX90은 ‘빠른 전기 SUV’가 아니라, 빠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끝까지 편안함을 선택한 전기 플래그십이었습니다.
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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