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남극과학기지의 에너지 체계를 친환경 수소 기반으로 전환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나선다.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그룹이 축적해 온 수소 기술 역량을 극지 환경에 적용하는 첫 사례이자, 남극에서 이어져 온 현대차그룹의 도전 정신과 기술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8일 해양수산부, 극지연구소와 함께 ‘남극과학기지 그린수소 그리드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오는 2028년 세종과학기지 설립 40주년을 앞두고 기존 디젤 발전 중심의 전력 체계를 친환경 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해 마련됐다.
남극과학기지는 외부 전력망과 연결되지 않은 고립된 환경에 위치해 있으며, 극심한 기후와 물류 여건으로 인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어려운 지역이다. 현재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의 전력 생산은 약 97%가 디젤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태양광 설비가 일부 운영되고 있지만, 여름철 백야와 겨울철 극야, 잦은 악천후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전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그린수소 그리드’는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친환경 에너지 순환 시스템이다.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력 중 잉여 전력을 활용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수전해 설비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저장한 뒤 태양광 발전량이 부족한 시기에 연료전지 발전기로 다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남극과학기지에 수전해기, 수소 저장 장치, 연료전지 발전기 등 핵심 설비를 구축하고 태양광 발전 설비 확충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는 현지 구축 및 운영을 담당하며, 수소·태양광·디젤 발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력 운영 체계를 구축해 친환경 에너지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에너지를 생산한 지역에서 직접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수소 생태계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청주와 파주 등지에서 수소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며 생산·저장·활용 기술을 축적해 왔으며,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홍콩 등에서 지역 맞춤형 수소 생태계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남극 프로젝트는 이러한 경험을 극한 환경으로 확장한 사례다.
현대차그룹의 남극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룹 계열사인 현대건설은 1988년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 연구기지인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한 데 이어 2014년 장보고과학기지 건립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국내 극지 연구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극지 시공 경험이 전무했지만, 현대건설은 국내에서 사전 제작한 자재를 남극으로 운송해 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단 2개월 만에 세종과학기지를 완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현대자동차 역시 남극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지난 2016년 현대차는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도전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싼타페 남극 횡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섀클턴의 외증손자인 패트릭 버겔과 함께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현대 싼타페는 남극 유니언 빙하 캠프에서 남극점을 거쳐 맥머도 기지까지 왕복 총 5,800km를 주행하며 양산차 최초 남극 횡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영하 28도에 이르는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입증했으며, 이후 탐험 차량을 포함한 싼타페 3대가 장보고과학기지에 기증돼 남극 내륙 연구 활동에 활용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그린수소 그리드 프로젝트를 통해 남극과학기지의 탄소중립 실현과 지속가능한 연구 환경 조성을 지원하는 동시에, 극한 환경에서도 적용 가능한 수소 에너지 솔루션의 경쟁력을 검증할 계획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수소 생태계 확대와 미래 에너지 산업 리더십 확보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




















